대구 구상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의 한 분인 ‘강우문’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강우문 화백과 오랜 인연을 가졌던 동원화랑이 앞산에 위치한 갤러리 동원에서 그의 기념전을 엽니다.이번 전시는 강우문 화백의 서정적이며 깊고, 짙은 유화의 맛과 질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몽당붓 그립습니다.
일생동안 우리네 민생들의 질박하고 지난했던 삶을 백의의 신바람으로 풀어낸 화가셨지요. 그처럼우리의 정한과 애환을 녹여냈던 한 원로 화백의 가슴 따뜻했던 여정 속에서 저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저희 동원화랑에서의 첫 작품전부터 수성아트피아와 함께 한 추모유작전에 이어 탄생 100주년 기념전까지 10회를 맞이합니다. 그 오랜 세월 속에서 저는 외롭고, 막막할 때는 저의 발걸음은 무작정 선생님 화실로 갔었지요.바위고개를 즐겨 부르시던 선생님, 그 노래처럼 삶 속의 파뭍혀진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한이 스며져 있는 작품들이 저를 위로하고 힘을 주었습니다.
제 어렸을 적 고향이야기를 들으시고 무란리 마을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그리셨죠. 선생님의작품들은 민초들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었지요.미수展 준비 땐 화실에 들렸더니 흔적이란 그림을 지우고 그 위에 초립동이를 그리고 계셨지요.예전 같으면 열점을 그릴 힘으로 이 한점을 겨우 그리시면서도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 완성되었던 그림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그리시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선생님을 추억하고 있는 저의 방에는 선생님께서 주신 낡은 팔레트와 몽당붓이 있습니다. 순수하고 청빈한 민생들의 백의에서 한을 풀어내며 신바람을 노래한 선생님.그 수많은작품들의 색채가 녹아있는 팔레트와 몽당붓이 마음 아련히 그리움으로 남습니다.평생동안 이젤 앞에 수많은 몽당붓을 남기셨으면서도 8호 정도의 작은 소품 ,‘빈지게 내려놓고,쉬는 노인’ 한점 미완성으로 남긴 체 병원 입원실로 가셨지요. 지금 그 작품은 어디에 있을까 보고 싶습니다.
오랜 병원 생활 중 어느 날 병실 창밖의 파릇한 버들가지를 보며 ‘선생님 창가에 새봄이 옵니다.’하였더니 ‘내가 어떤 그림을 그렸노?’ 하시기에 ‘삶이 서린 풍경과 민초의 춤. 백의의 신바람을 그렸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말을 듣자 움직이기 힘든 손으로 스케치북과 연필을 든 선생님은신들린 손놀림으로 예전 풍경을 그리셨습니다. 또 어느 날은 제 얼굴을 한참을 바라 보시더니 ‘참하게 잘 생겼네’ 하시면서 저의 얼굴을 그리시고 손동환이란 이름을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써주셨지요. 그 작품이 선생님 수결하신 마지막 그림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소천하시기 얼마 전이었지요. 요양병원 간호사께서 선생님이 요즘 기억을 못 하신다고 하시기에 혹, 저를 몰라 볼까 봐‘선생님, 저 알지예? 동원화랑’라고 하자 멍하게 계시던 선생님께서 ‘아~동원화랑 누가 잊으라캐도 못 잊지 잊어서도 안되고 잊을 수가 없지’라며 혼잣말을 하셨지요. 저도 선생님 잊으라캐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원화랑 손동환